청산리 전투

청산리 대첩 기록화
출처: 독립기념관

개요

청산리 전투

청산리 전투는 독립군이 1920 년 10 월 21 일 아침부터 10 월 26 일까지 6 일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이도구와 삼도구 일대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독립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의 부대원 1,500 여명은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편성된 일본군 동지대(東支隊) 5,000 여명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는 독립전쟁 첫 승리를 이룬 봉오동 전투에 이은 빛나는 승리의 역사이며 또한 독립군은 물론 온 겨레의 사기앙양과 독립정신 고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참고 : 국가보훈부 블로그

 

○ 배경

 

⚬ 봉오동 전투에서의 패배 이후 일제는 간도 지방의 독립군을 없애기 이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직접 일본군을 간도로 침공시켜 독립군과 항일단체를 없애고자 했다.

⚬ 일본군의 강요로 독립군을 탄압할 수 밖에 없었던 중국 관리들은 독립군에게 근거지를 이동할 것을 요구했고, 독립군단은 1920년 8월부터 서북방 삼림지대로 가게 되었다. 일본군과 전투를 벌일 경우, 양민들이 죽거나 다칠 것을 염려해 전투를 피하려고 한 것이다.

○ 전투 일지

 

⚬ 1920년 10월 21일 백운평 전투

   • 10월 21일, 이동 중이던 독립군과 뒤쫓아 오던 일본군이 청산리에서 만나게 됨.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부대는 백운평 골짜기에 숨어 일본군이 들어오길 기다리다가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물러날 길이 좁은 지형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덕분에 우왕좌왕하던 일본군은 많은 피해를 입고 물러남.

⚬ 1920년 10월 22일 완루구 전투

   • 완루구 지역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있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의 공격을 받음.

     독립군 연합부대는 한때 일본군의 포위 속에서 위기를 겪었다가 빠져나와 중앙의 일본군 부대를 공격함.

     이때 독립군 부대가 이미 중앙에서 빠져나온 것을 모르고 중앙의 일본군을 독립군으로 착각한 다른 일본군 부대가 독립군과 함께 자기편을 공격함.   

⚬ 1920년 10월 22일 천수평 전투

   • 10월 22일 새벽 길림성 화룡현 천수평 일대에 숙영 중인 일본군 기병 연대를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가 기습하여 격멸함.

⚬ 1920년 10월 22일 어랑촌 대전투

   • 10월 22일 오전부터 종일 전개된, 청산리 독립전쟁 중 가장 큰 규모의 전투.

     김좌진부대와 홍범대부대가 연합하여 아즈마지대의 주력과 전투를 벌여 300여명을 사살함. 

⚬ 1920년 10월 23일 맹개골 전투, 만록구 전투

⚬ 1920년 10월 23 ~ 24일 쉬거우 전투, 천보산 전투

⚬ 1920년 10월 25일 ~ 26일 고동하 전투

○ 청산리 전투의 의의

 

⚬ 독립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가장 규모가 큰 싸움으로, 한국 무장독립운동 사상 가장 빛나는 전과를 올린 승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