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주와 고려인동포

강제이주와 고려인동포

스탈린의 폭거로
카자흐스탄에 강제이주된 고려인, 홍범도

“천민으로 태어나 비범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중앙아시아로 쫓겨가 쓸쓸히 살아야했던 홍범도의 말년과 고향을 떠나 힘겹게 살아온 고려인동포의 삶, 고통을 홍범도기념사업회가 밝혀가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장군’, ‘빨치산 대장’, 역전의 항일투사 홍범도의 노년은 불우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소련정부의 정책에 의한 고난 이었다. 그나마 조국과 가까운 러시아 극동에서 동포들과 조선말을 하면서 살아가던 노후마저도 허용되지 못하고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하게 된 것이다.

근대 세계사에서 초유의 ‘민족 강제 집단 이주’는 스탈린에 의해 자행되었다. 극동지역 한인이 그 첫 대상이었다. 홍범도와 함께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은 약 17만명이었다. 러시아 거주 한인 인구 전체가 강제이주를 당한 셈이다. 소련정부는 야만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고려인들을 이주시켰다. 총 124대의 수송열차가 동원되었는데, 이는 객차와 화물차, 가축을 실은 가축운반차로 나누어졌다. 가축운반차는 가축의 분뇨 냄새 때문에 바닥과 벽을 널빤지로 막은 것이었고, 널빤지 사이가 벌어져있어 열차가 달리면 사방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 조국을 잃은 자들이 바로 ‘고려인’이다.

고려인은 척박한 카자흐스탄 사막지대를 개간해 벼 등 여러 농작물들을 심으며 살았다. 그러나, 소련정부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한국어 사용, 거주 이전 금지 정책으로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내팽개쳐진 고려인들의 삶 또한 사막과 같이 척박해졌다. 한편 홍범도는 남은 여생을 크즐오르다의 고려극장의 수위로 근무하게 된다. 지난 파란만장한 삶을 되돌아보며, 점차 노쇠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렇게 쓸쓸한 말년을 보냈던 홍범도 장군은 조국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에 생을 마감한다. 날으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조국 광복을 위해 쏟았던 그의 열정은 여전히 머나먼 땅 카자흐스탄에 묻혔다.

그리고, 2021년 8월, 아쉬워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을 뒤로 한채, 순국하신 지 78년만에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는, 냉전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끄집어 내어, 비극적이었지만 우리 말과 문화를 이어 온 위대한 고려인동포의 삶을 조명하고, 미래 지향적이면서 지속가능한 교류 사업(문화, 교육, 농업교류)을 이행하고,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동포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