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 기록화
출처: 독립기념관

개요

봉오동 전투

일제강점기 중반기인 1920년 6월 7일, 홍범도를 필두로 최진동, 안무 등 대한북로독군부 소속 한국 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국 지린성 허룽현 펑우동(鳳梧洞, 한국명 봉오동)에서 정규 일본군인 월강(越江)추격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

○ 배경

 

⚬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 운동, 11월 3일 대한민국 통합임시정부 출범

⚬ 1919년 말부터 독립군의 국내진공 활성화, 일본군의 정보수집 및 국경수비 강화
⚬ 홍범도 장군 대한민국 원년 12월(1919년) ‘대한독립군 유고문’ 발표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군으로 출정 선포

○ 전투 상황

 

⚬ 1920년 6월 4일 독립군 연합부대 협조하에 신민단(박승길과 24명) 국내 진입

• 새벽 5시 일본군 순찰소대 습격
• 10시 일본군 니이미 중위가 이끄는 남양수비대 삼둔자 마을 진입하여 무차별 사격과 민간인 학살

 

⚬ 6월 5일 일본군 19사단 야스카와 월강추격대 편성

 

⚬ 6월 7일 새벽 3시 일본군 남양수비대와 월강추격대 합류 두만강 건넘

• 독립군 지휘부는 월강 정보를 입수하고 주민 대피 및 전투대비

• 봉오동 골짜기를 4개 부대로 나눠서 포위 배치

• 12시 20분 제 2중대 3소대 이화일 부대가 교전하는 척하며 물러나 봉오동 상촌 포위망 안으로 일본군 유인

• 13시 홍범도 장군의 총공격 신호로 매복 중이던 독립군 일제히 집중 사격

• 일본군은 혼비백산하여 피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에 빠짐.

기관총 중대를 선두에 세우고 포위망 돌파를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사 157명, 중경상 300여명(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 발표)
• 16시 20분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일기 불순으로 독립군 공격 중단

• 일본군은 함경북도 유원진 방면으로 철수

○ 봉오동 전투의 의의

 

⚬ 독립군 각 부대가 처음으로 연합하여 간도에 불법 침입한(월경) 일본군 정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둠

⚬ ‘독립전쟁 1회전’이라 불리며 이 승리를 계기로 독립군들의 사기가 크게 높아져 이후 항일무장 투쟁이 활발히 전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