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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190 조선의용대, 항일무장투쟁의 재개를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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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제일과 독립제일이라는 두 개의 구호 아래 창설된 조선의용대는 후난과 장시, 안후이와 뤄양 등 중국 남부지방에서 활동했다. 김원봉은 100여 명의 대원들을 이끄는 총대장직을 맡았고, 핵심대원도 그가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출신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모두 실전과 이론에 능한 엘리트들이었다. 조선의용대의 결성은 청산리전투를 끝으로 사실상 그 명맥이 끊겼던 항일무장투쟁의 재개를 선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한연합전선을 통해 중일전쟁의 승리와 나아가서는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던 조선의용대는 전투보다는 대적선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중국유학생 출신의 엘리트들이 많았던 조선의용대원 대부분은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했다. 중국군과 의사소통이 자유로웠을 뿐 아니라 일본어가 유창했다. 때문에 선전문을 써서 살포하고 적진을 교란시키는 선전 활동이 가능했다. 그것은 당시 중국군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의용대는 중국군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 능력을 인정받은 조선의용대는 이후, 일본군 심문과 첩보, 암살, 파괴 등 비밀작전에도 투입됐다. 100여 명으로 출발한 조선의용대는 설립 1년 만에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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