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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207 여운형, 농민동맹과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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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1943년부터 23만여 명의 조선청년이 일제의 총알받이가 되고, 20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강제징용 됐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전향이 이어진 1940년대. 일제는 여운형을 초청해 중국과 화해를 위해 힘써달라고 요청했고, 여운형은 이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참전 등으로 악화일로를 겪는 일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게 된 여운형은 일제 패망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1944년 10월, 용문산에서 13명의 청년이 여운형과 만난다. 경기북부지역을 대표한 청년들이 비밀결사단체 농민동맹을 결성한 것이다. 당시 농민동맹원들은 용문산을 거점으로 징병을 피해 도피한 청년들을 보호하고, 일제의 공출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비슷한 시기인 1944년 8월, 민족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까지 좌우를 망라한 애국세력들이 뭉친 조선건국동맹이 결성됐다. 해방 이틀 만에 위용을 갖춘 건국준비위원회 뒤에는 이들의 준비가 있었다. ※ 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 : 1945년 8·15광복 후 여운형(呂運亨)이 중심이 돼 조직한 최초의 건국준비단체. 약칭하여 건준(建準)이라고도 한다. #몽양 #여운형#비밀결사단체 #농민동맹 #결성#조선건국동맹#건국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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