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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158 노인동맹단 강우규, 3.1운동 후 최초의 의열투쟁을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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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한약방을 운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았던 강우규는 경술국치 이후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5년 길림성 요하현에 정착한 그는 광동학교를 세워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만주 각지의 독립운동세력을 연결할 거점을 만드는데 힘썼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요하현 일대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노인동맹단의 일원으로 강우규는 총독 암살 계획에 자원했다. 46세 이상부터 70대까지 나이 제한을 둔 노인동맹단은 한말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조국의 운명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세대였다. 1919년 9월 2일, 65세의 노인 강우규는 서울역에 도착한 신임 조선총독 사이코 마코토가 마차에 오르는 순간 폭탄을 던진다. 일본육군소장과 경찰서장 등 30여 명이 부상을 입고 3명이 사망했다. 비록 총독 암살은 실패했지만,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열 투쟁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의거 16일 후인 9월 17일. 강우규는 조선인 순사 김태석에 의해 체포된다. 그의 재판에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강우규는 법정에서 두 차례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거침이 없었다. 판검사가 반말로 질문하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1920년 5월 27일 일제는 강우규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같은해 11월 29일, 독립운동가 강우규가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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