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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 본부 유적지
중국만주지역대한독립군 본부 유적지
문헌상 : 연길현 명월구
현재 : 안도현 장흥향 풍산촌 일대
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무장조직으로 홍범도가 지도자
   
1919년 이후 홍범도 등 의병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
중심인물은 홍범도, 주달, 박경철등이고, 갑산, 혜산진등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1919년 대한국민회군으로 통합되었다

고려일보사
러시아 카자흐스탄 지역고려일보사
문헌상 :
현재 : 카자흐스탄 알마튀 아만겔듸 거리 4번지
레닌기치는 몰론 그 후신인 고려일보에는 많은 독립운동 관련 기사와 회고가 실려 있음
   
고려일보는 선봉, 레닌기치를 계승한 신문이다. 선봉은 강제이주후인 1938년 5월 15일부터 크즐오르다에서 레닌기치란 명칭의 새로운 한글신문으로 다시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알마타의 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 선동선전부에서 크즐오르다에서 신문을 발간할 것을 허락한 결과였다.
레닌기치는 1978년 알마타로 이동하였다. 레닌기치는 소련붕괴후인 1991년초 고려일보로 명칭을 바꾸고 자유신문으로 선포되었으나 재정적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여 1994년부터는 국가신문으로 등록하여 국가로부터 60%의 재정보조를 받았다. 현재 고려일보 주간은 채유리씨이다.
타블로이드판 주간지로 발행되고 있고 현재 직원은 13명이다. 레닌기치시절인 1954년 7월 2일부터 1년 단위로 묶어 놓았다. 1938년판은 없고 1953년도판은 문서보관소에 있다고 한다. 1990년까지는 한글, 그 이후는 한글과 러시아어 병용으로 발간하였으나 배포량은 줄어 들었다. 2년전부터 파일로 저장해놓고 있다. 재정적 곤란상태에서 구독자의 확보나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이다.

청산리대첩 기념비
중국 동북부 지역청산리대첩 기념비
문헌상 :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 입구
현재 : 화룡현 청산리 림장입구
청산리 대첩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청산리 일대에서 홍범도의 연합부대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이 연합하여 백운평 전투를 비롯하여 10여 차례 일본군과 싸운 전투다. 2001년 세운 거대한 기념비의 뒷면 벽에는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의 건립 취지문과 이 기념비 건립의 경위를 밝힌 글이 석판에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내외를 진감한 청산리 항일 대첩은 항일투쟁사상 천고에 빛날 력사적 전역이어늘 1920년 10월 21 - 26일 김좌진 홍범도가 통솔하는 항일련합 부대는 화룡시 2 - 3도구에서 연변 각 민족 주민의 대폭적 지원하에 협동 작전으로 백운평 와록구 어랑촌 874고지 고동하반전투 등 대소 수차 격전을 거쳐 천으로 헤아리는 일본침략군을 섬멸하였거늘 소수로 다수를 타승한 이전과는 연변 내지 동북 지역 반일무장 투쟁사상 새로운 시편을 엮음은 물론, 조선 인민의 반일 민족 독립 운동을 주동한 력사로서 청사에 새겨졌어라.
청산리 대첩은 "일군 무적" 의 신화를 깨뜨리고 연변 내지 전국 각 민족 인민의 항일투지를 지대히 고무하고 일본 군국주의의 위풍을 추풍 락엽처럼 쓸어버렸거늘, 그 실패를 달가와 않은 일본침략군은 연변 지역 무고한 백성에 대하여 선후로 2,600명을 참살한 보복의 "경신녀 대학살"을 감행하였은즉 그 죄 하늘에 사무치고 그 참상에 치가 떨리는도다.
청산리 대첩 80 주년에 즈음하여 연변 지역 각 민족 인민은 이 기념비를 세워 선렬들의 충혼을 기리고 위 위업 천추 만대에 전하노라

경신년 대참안 중 조난 당하신 동포 원혼들이여, 고이 잠드시라!
청산리 전역 중 피흘려 분전하신 항일 열렬들이여, 영생불멸하라!
연변 각 민족 인민 삼가 드림
2001년 8월 31일 준공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와 화룡시인민정부의 령도하에 주내 여러 민족인민들의 공동한 노력에 의하여 오늘 여기에 세워지게 되었다.
5000평방메터의 부지에 넓이 25메터, 놓이 17메터 60센치로 된 이 기념탑은 연변 건축설계원에서 설계하고 화룡시태달건축유한공사에서 시공하였다.
이 기념비 수전중 연변국제공공관계협회와 연변해외문제연구소가 일상사업을 주최하고 처리하였다.
우리는 각계 인사들의 여러면으로 되는 성원과 지지를 받았다. 특히 한국광복회의 정성어린 지지를 받았다. 이에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린다.

연변여러민족인민청산리항일
대첩기념비수건위원회
2001년 8월 31일

 

홍범도장군 묘지
러시아 카자흐스탄 지역홍범도장군 묘지
문헌상 :
현재 :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구 중앙공동묘지
한말 항일의병과 독립군무장투쟁의 지도자 홍범도
   
홍범도묘지는 공동묘지 입구에서 바로 보일 정도로 잘 꾸며져 있다. 왼편에는 계봉선생의 묘가 있다. 흉상 주변에 3개의 기념비가 있는데, 각각 1937년의 강제이주, 1995년의 광복 50주년, 1997년 강제이주 60주년의 시점에 맞추어 그에 부합하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1937년의 강제이주를 상징하는 기념비에는 끌려가는 사람들을 그려놓고 그 아래에 “이러한 것이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1997년의 강제이주 60주년 기념비에서는 “민족간의 친선, 평화, 정의를 위하여”, 광복50주년기념 에서는 홍범도의 연보를 적고 있다. 홍범도 흉상 뒤편에는 1941~45년 2차대전 러시아인 참전 공동묘지가 있다
 


차피거우
러시아 원동지역차피거우
문헌상 :
현재 : 지신허 동쪽으로 6-7 Km 상거지역
1910년 6월 국망 직전 국내외 항일의병세력의 통합군단을 표방하였던 십삼도의군의 편성장소로 추정된다.
   
* 심삼도의군의 역사적 의의
국망 직전인 1910년 6월 21일(음 5월 15일) 편성된 십삼도의군은 망명노장 유린석과 간도관리사 이범윤을 주축으로 하고 함경도 의병장 홍범도와 이남기, 그리고 황해도 의병장 이진룡 등이 참가해 국내외 의병세력의 통합군단을 표방한 것이었다. 청일전쟁 이래 15,6년간에 걸친 한말 의병의 최후의 결정판으로 해외에서 단일군단을 표방하고 대규모 항일전을 구상하였던 데서 큰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천보산 전적지
중국 만주지역천보산 전적지
문헌상 :
현재 : 용정시 천보산 계곡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독립군 연합부대가 10월 24일과 25일에 천보산 남쪽 부근에서 일본군 1개 중대를 습격하여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이범석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한 부대는 10월 24일 8시와 9시 두차례에 걸쳐 천보산 부근의 은동광을 수비하고 있던 일본군 1개중대를 두차례 습격하였다.
또한 홍범도 연합부대에 속한 한 독립군 부대는 10월 25일 새벽 식량조달을 위해 천보산 부근에 나갔다가 일본군을 습격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어랑촌 전적지
중국 만주지역어랑촌 전적지
문헌상 :
현재 : 화룡시 와룡향 어랑촌 야계 골짜기
1920년 10월 22일 어랑촌 서남방 표고 874고지 남측에서 김좌진부대와 홍범도 연합부대가 공동으로 일본군을 섬멸한 전투
   
어랑촌 전투는 어랑촌 마을을 중심으로 하여 10월 22일 아침부터 종일 계속되었다. 독립군측은 대한군정서와 홍범도부대등 연합부대 1,500여명이 동원되었다. 일본군은 가납 기병연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을 위해 일본군 대부대가 출동하였다.
이 전투에서 적측은 연대장 가납이하 장병 1천여명의 전사자를 내었으며, 우리측에서도 전사 1백여명, 실종 90여명, 부상 200여명이었다.

블라디보스톡 첫 한인 거주지역 구개척리 웅덩마퇴, 둔덕마퇴
러시아?블라디보스톡 지역블라디보스톡 첫 한인 거주지역 구개척리 웅덩마퇴, 둔덕마퇴
문헌상 : 블라디보스톡 카레이스카야 거리
현재 : 블라디보스톡 포크라니치나야 거리
블라디보스톡 군항 건설을 전후하여 한인들이 최초로 집단거주하던 지역
   
현재 포크라니치나야 거리 1번지로부터 둔덕마퇴라고 부르던 아무르만에 접해 있는 남쪽 언덕과 ‘웅덩마퇴’ 라고 하던 그 아래 저지대에 이르는 일대가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한인거주지)라 불리던 개척리 마을이 있던 곳이다.
1911년 5월 콜레라 예방을 이유로 이곳의 한인마을을 폐쇄하고, 한인들을 신한촌으로 이주시켜 기병대의 주둔지로 삼았다. 이후 웅덩마퇴, 둔덕마퇴의 한인부락을 ‘구개척리’ 라고 했고, 블라디보스톡 교외에 새로이 형성된 신한촌은 ‘신개척리’로 불렀다. 구개척리는 을사늑약체결 이후 국치를 전후해 신채호, 장지연, 이강, 홍범도, 유인석 등 국내외 저명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였다.
 

밀산 무관학교 유적지
중국 만주지역밀산 무관학교 유적지
문헌상 : 밀산현 봉밀산자
현재 : 밀산시 봉밀산
1920년대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관학교
   
봉밀산은 밀산벌 동남간, 흥개호 연안에 위치한 해발 574미터의 산으로, 1913년 이승희와 이상설의 후원으로 밀산무관학교가 설립되었다. 1914년에는 홍범도가 이곳에서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군단 결성지
중국 만주지역대한독립군단 결성지
문헌상 : 흑룡강성 밀산현 당벽진
현재 : 밀산시 당벽진 봉밀산
1920년 10월 일본군의 간도출병이후 만주의 독립군들이 러시아로 이동하기 전에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여 재조직한 곳
   
대한독립군단의 총재에 서일, 부총재 홍범도와 김좌진, 총사령 김규식, 참모총장 이장녕,이청천 등이었다. 대한독립군단에 속하는 독립군은 3,500명으로써 3개 대대로 편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