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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봉오동전투 전승 제93주년 기념식 보도
  관리자   2013-08-10
  1038
코나스[2013. 6. 7]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 장군

written by. 최경선

무장독립투쟁의 전설적 영웅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 전승 93주년 기념행사 열려

모택동이나 체 게바라보다 한세대 이전에 게릴라 전술을 개발하고, 처음으로 진지전이 아닌 기동전을 발전시켰으며, 독립전쟁을 위해 부인과 두 아들을 모두 희생했으나 묘지는 아직도 이국만리에 남아 조국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가 있다.

일제 치하인 1916년, 48세에 독립군의 모체인 포수단을 창설했고, 1919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에 취임해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대첩을 달성했으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3년에 서거, 카자흐스탄에 묻힌 여천 홍범도 장군이 바로 그다.


▲ (사)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주최로 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봉오동전투 전승 제93주년을 기념행사에서 이종찬 이사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konas.net


봉오동전투 전승 제93주년을 기념하는 국민대회가 (사)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주최로 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 날 이종찬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봉오동 대첩은 우리 무장독립운동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자랑스런 기록이지만 세부적인 연구가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의 부대가 얼마큼의 병력을 확보했는지, 병력을 어떻게 무장시켰는지, 장비는 무엇이었으며 조달 경로는 어떠했는지, 군량미나 피복지원과 같은 후방지원은 누가 담당했는지, 적정은 어떻게 입수했는지 등에 관한 연구가 부족하다”며 기념일을 통해 영웅적인 투쟁만 격찬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를 확인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전쟁과 평화연구소의 서인환 박사는 ‘홍범도 장군의 무장투쟁과 전략전술’을 주제로 조선시대 산포수의 활약과 정규군화, 일제 치하 국내 의병과 만주 독립군의 수난, 봉오동 전투의 전개와 전략전술 등을 설명하고, 당시 의병과 독립군의 전투는 우리 국민들에게 국권회복의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전투와 다르다고 차이점을 덧붙였다.

아울러 대일 독립군들의 숭고한 정신세계 계승과 전투지역의 군사적 분석을 통한 전황의 재구성, 쌍방간 투입한 무기체계의 비교분석, 다양한 출신의 독립군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솔한 리더십의 실체 등을 규명하는 연구를 봉오동 승전이 남긴 과제로 제시했다.

이 날 행사에는 국민대학교 학군장교 후보생들도 참석했는데, 정외과 4년 박동혁 후보생은 ‘홍범도 장군께 드리는 편지’ 낭독을 통해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성공적인 독립전쟁을 수행하셨다”면서 “특히 봉오동 전투는 만주지역 독립전쟁 최초의 승리임과 동시에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어 “전 생애를 그토록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바쳤지만 이국만리 카자흐스탄에 묻혀 아직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신 장군님이 고국에서 안면하시기 바란다”며 추모의 마음을 바쳤다.


▲ 이 날 행사 마지막은 홍범도 장군과 봉오동전투 전승, 대한민국을 위한 만세 3창으로 마무리했다.ⓒkonas.net


한편 이 날 행사에는 강성만 서울북부보훈지청장, 박유철 광복회장, 신상태 서울시재향군인회장이 축사를 통해, 홍범도 장군과 봉오동 전투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국가관과 안보의식 강화의 계기로 삼을 것을 다짐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