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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기고-이종찬 이사장
  관리자   201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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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13. 6.5]

[기고/이종찬]봉오동 전승 기념일에 부친다


6월 7일은 우리 무장독립투쟁사에서 빛나는 위업을 달성한 날이다. 1920년 이날 ‘나는 홍범도’라는 별명이 붙은 우리의 영웅은 중국 지린 성 허룽 현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제의 정규군과 교전하여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뒀다.

일제에 저항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방략은 대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건국을 준비하기 위한 실력배양론, 다음은 임시정부를 세우고 외교활동을 통하여 독립을 쟁취한다는 방략, 마지막이 왜적과 무장투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실력배양 준비론이나 외교론은 비교적 많은 연구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의열투쟁도 몇몇 한정된 의사(義士)의 혁혁한 투쟁을 중심으로 역사에 많이 기록되었다. 하지만 부대를 편성하여 일제와 싸운 기록들은 아직도 연구가 미흡하여 빈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북만주와 극동 러시아에서의 무장투쟁은 최근에서야 역사자료를 접할 수 있어서 뒤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북한은 김일성만을 영웅으로 만든 심각한 자화자찬의 역사 왜곡을 자행하였다. 우리의 연구가 미진하여 그들에게 빌미를 주게 된 결과다.

첫째, 홍범도 장군은 양반계급 출신이 아니다. 비천한 광부였고, 입에 풀칠하기 위해 절을 찾아간 식객승(食客僧)이었고, 포수로서 생활을 이어간 하층계급이었다. 국가로부터 소외된 민중이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 아닌가?

둘째, 홍 장군은 항상 자기를 낮추었다. 의병이나 독립군 투쟁은 각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이로 인해 상호 간에 주도권 다툼도 발생하고 이기적인 종파의식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홍 장군은 항일투쟁 전선을 앞에 두고 서로 작은 이해 싸움으로 전투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해 연합한 부대의 사령관 자리를 양보하고 오히려 그 휘하의 연대장으로서 임무를 맡아 부대를 지휘하였다. 이는 마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정신과도 같은 숭고한 희생정신이다.

셋째, 홍 장군은 항상 전투 그 자체를 중요시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사실도 없다. 그의 모든 것은 실전에서 배운 지혜였다. 그는 지휘도나 권총을 차지 않고 장총 두 자루만 자나 깨나 지니고 다녔다. 그는 “지휘도나 권총은 왜 차는가? 그것으로 겉치레나 하고 동료나 잡았지, 왜놈을 잡을 수 있나? 장총이라야 왜병을 쏴 죽이지”라고 말했다.

넷째, 홍 장군은 뛰어난 전술 능력을 갖추었다. 적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하여 완전히 퇴로가 차단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시에 적을 섬멸하는 그의 탁월한 전술지휘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봉오동대첩은 우리 무장독립투쟁사에서만 큰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같이 주변의 강대국에 포위된 환경에서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는 점에서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열의 묘가 아직도 카자흐스탄에 외롭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에 대한 우리 국민의 홀대와 무례를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지 부끄럽기만 하다.

이종찬 (사)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