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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천 홍범도장군 서거70주년 카자흐스탄 현지 추모행사를 다녀와서
  문준진   20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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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 홍범도장군 서거70주년 카자흐스탄 현지 추모행사를 다녀와서

우리 (사)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의 주최하에 2013. 10. 24. ~ 28. (3박5일)동안에 여천 홍범도장군 서거70주년 추모식 및 학술회의를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개최했으며 크즐오르다 기념공원 참배 행사에 참여하면서 행사 현장중심으로 활동 내용을 적어 보았다.
주최는 사)여천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고려인협회, 독립유공자후손협회와 후원은 국가보훈처, 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 국립고려극장이 했으며, 본 행사는 많은 기관 및 현지 고려인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성대히 치러졌다.

1. 참석자
-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서 이종찬 이사장, 홍성덕 상임이사, 황원섭 이사, 홍헌일 이사, 장치순 이사, 김유진 고문, 조성우 고문, 류병균 이사, 이영 철 이사, 문준진 사무총장, 박재옥 기획국장
- 현지 고려인으로는 이 오레그 극장장(고려극장), 김 게르만 부회장(고려인 협회 부회장), 최영근사장(前고려일보대표), 계 니콜라이 회장(독립유공자 후손 협회), 명 드리트리(카자흐스탄대학 교수), 계학림선생, 김에리나 고 려 문화중심 회장 등
- 우당 기념 사업회에서는 신판귀 이사, 김덕환 이사
- 윤봉길 월진회 회원으로 이우재 회장(전 국회의원), 홍중표 이사
- 학술회의 참석자로는 김삼웅 前독립기념관 관장, 반병률 외대교수, 장세윤 박사, 서인한 박사, 심헌용 박사, 명 드리트리(카자흐스탄대학 교수),
한 브라디스라브(연해주 한인의병장 한창걸의 무장독립투쟁 발표, 우즈베 키스탄 고려인사이트 운영자)
- KBS기자 : 황현택 기자, 김준우 사진기자

2.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선생 소개

홍범도 장군(1868~1943)은 일제 강점기에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고, 193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 제 이주된 후에는 고려극장에 헌신하였으며, 계봉우 선생은 한국어 교본을 만들어 총칼보다 강한 교육을 무기로 한민족의 얼을 지켜냈다.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의 농업을 발전시키는 등 지대한 공헌을 해왔으며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선생 두 분은 고려인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3. 추모식, 학술회의, 연극 및 기념공원에서 행사를 치르면서
가. 추진 과정
- 본 행사를 주관하는 기념사업회에서는 이종찬 이사장과 홍성덕 상임이사, 황원섭 이사, 홍헌일 이사, 문준진 사무총장, 박재옥 기획국장, 그리고 송 정화간사 등이 몇 번의 미팅을 통해 홍범도 장군 서거 70주년 행사만큼은 성대히 치를 계획을 가지고 추진하였다. 그러나 행사비용 문제, 우리말을 할 수 없는 현지 고려인과의 의사소통문제, 학술회의 참석인사들의 섭외와 자료 확보 등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 하지만 본회 이종찬 이사장의 협조 하에 황원섭 이사께서 보훈처, 외교부, 카자흐스탄 대사관, 고려극장, 현지 고려인협회 및 통역관, 독립유공자협회 등과 많은 접촉을 하고, 학술회의 참석인사 섭외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결과 본 행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다. 또한 KBS 에서 취재를 하여 10월 25일 21시42분에 홍범도장군 서거70주년 행사를 방송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나. 추모식 행사를 위해 인천공항을 출발하며
- 우리 일행은 인천공항 출국 대합실에 하나 둘 모인 후 삼삼오오 짝을지 어 여행사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원 확인 후 다른 일행은 CIQ 수속을 위해 들어가는데, 여권을 바꿔 오신분이 있어 운 전기사가 여권을 가지러 가 제 시간에 올 수 있을지 염려했으나 다행히 제 시간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 모두가 무사히 출국을 하게 되었다.
- 긴장과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7시간의 여정 끝에 우리는 카자흐스 탄 알마티 공항에 도착했다. 마침 우리나라 날씨와 비슷하고 시차도 크지 않아 적응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 국하여 한국인 상대로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인 무라트는 의 사소통도 잘되고 카자흐스탄의 역사며 관광지 등을 잘 설명하여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마중 나온 고려인 동포들의 영접을 받으며 카자흐 스탄 호텔로 가서 짐을 부리고 이미 예약된 한국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맛있게 한 후 카자흐스탄 호텔로 직행하여 여장을 풀고 첫날밤을 보냈다.

다. 고려극장에서 추모식행사, 학술회의 개최 및 연극 관람
- 이튿날, 본 행사를 위해 고려극장에 비치할 물품 등이 정 위치에 있는지 확인을 해 보니 행사를 하는데 문제가 없이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 행사장에 참석하기 위해 고려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방명록에 이름 등을 기재하느라 분주하였다. 책자를 받아 들고 너무 감격하고 행복해 하 는 나이 지긋한 여성분들, 나름 꽃단장하고 나타난 여성분 그리고 머릿결 이 반백이 된 남성들…. 말은 통하지 않으나 이역만리에서 한 민족 한 핏 줄로서 그 고난의 역경을 딛고 당당하게 살아 온 동포의 모습을 보니 마 음 한 편이 저려옴을 느꼈다.
- 식장에 이종찬 원장과 관계자, 카자흐스탄 백주현 대사, 손치근 총영사, 김게르만 고려인협회 부회장과 그 일행, 계 니콜라이 독립유공자후손 회장 과 그 일행, 이 오레그 극장장, 학술회의 관계자들이 입실하고 고려인들로 가득 찬 가운데 홍범도장군 순국 70주년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고려 일보 대표를 하고 우리말과 러시아말을 할 수 있는 최영근 씨와 고려인 여성이 보았다. 서거 70년 만에 머나먼 이국땅에 찾아와 본 행사에 참여하 는 우리로서는 감개무량하고 한편으로는 송구스런 마음도 들었다.
- 사회자의 엄숙하고 떨리는 목소리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장내는 숙연함으로 가득함과 동시에 당시 항일독립 투쟁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 했다. 이종찬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홍범도 장군은 일제 강점기 하층민이었지만, 조국이 외세에 침탈당할 때 분연히 일어나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며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겼다. 계 니콜라이 회장도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처음으로 열린 홍범도 장군의 추모식은 그 의미가 크다"며 "한국정부가 앞으로도 고려인 독립유공자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쏟아 행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어서, 카자흐스탄 백주현대사의 추모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홍 범도 장군을 기리어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영정에 올리면서 다시는 우리 민족사에 나라 잃은 슬픈 역사가 없기를, 우리 민족이 분열과 분단을 극복 하길 빌었을 것이다. 또한 그와 동시에 홍범도 장군 등 애국 열사들이 부 디 영면하시길 빌면서 나름대로 굳은 다짐을 하였을 것이다.
- 그리고 반병률 외국어대 교수 진행 하에 서인한 박사, 장세윤 박사, 심헌 용 박사, 한 브라디스라브(한창걸 독립투사의 방계손자) 발표와 김삼웅 前 관장, 명 드리트리(카자흐스탄대학 교수) 등의 질의응답 등 현장감 있는 토론이 이루어졌고 이는 홍범도 장군의 항일투쟁의 역사성과 시대정신을 참석자들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 한편, 태장춘(1911-1960, 카자흐스탄 고려인 문단에서 활약한 1세대 작 가로 1932년 불라디보스톡 고려극장 창설 주역임)선생은 홍범도 장군 생 전에 직접 장군으로 부터 구술을 받아 각본을 작성한 것이며 당시 크즐오 르다 고려극장에서 홍범도 장군이 보는 앞에서 연극을 초연했는데 홍범도 장군은 다소 과장되거나 잘못된 부분을 즉시 정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로 그 연극 극본이 사라져 버렸는데 수소문 끝에 한양대 연극영화 과에서 극본을 찾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장과 접촉이 되어 그 극본으로 우리말을 못하는 고려인 연극하는 사람들을 짧은 기간 훈련 시켜 연극 무대에 올리게 되었으니 역사적인 날이 아닐 수 없다.
- 그 날 저녁 7시에 고려인 관계자 및 우리 일행들은 당시 홍범도 장군이 했을 말이나 행동, 연극의 내용 등을 기대하면서 연극에 눈을 떼지 못하고 열심히 지켜보았다. 당시 독립운동의 어려움이 느껴졌고, 일본 군인들의 치밀한 방해 공작 속에 전술 전략을 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어색한 면도 없지 않으나 내용을 손보고 보완하다면 훌륭한 연극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장면에는 빠졌으나 장세윤 박사가 들려준 바에 의하면 이런 일화가 있다고 한다. 즉, 홍범도 장군의 부인과 아들이 일본 헌병대에 갇혀 있을 때 홍범도를 회유하기 위 해 일본 헌병대가 부인에게 회유문을 쓰게 하여 아들을 통해 홍범도 장군 에게 전달했는데, 홍범도 장군은 ‘저런 나라를 팔아먹을 놈’이라고 외치면 서 즉시 총을 뽑아 아들을 겨냥해 쏘았고 옆에 있던 부하가 밀친 덕분에 총알이 아들의 귀를 스치며 구사일생으로 살았으나 그 후 부인과 아들은 옥사하고 말았다는 비극적인 일화이다.

라. 크즐오르다의 추모공원을 찾아서
- 우리 일행은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알마티 공항을 향해 떠났다. 알마 티 공항에서 크즐오르다 공항까지는 약 1시간40분이 소요된다. 인터넷상으 로나 신문지상을 통해서만 보던 추모공원을 직접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가 슴이 설렜고 뭉클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1937년 9 월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10만 여명이 물설고 낯선 이국땅을 향 해 중고 화물칸을 개조한 여객차량을 한 달여 기간 동안 타고 가면서 전 염병 또는 객실칸 간의 충돌 등으로 인해 30% 이상이 인명 손실을 보았다 니 얼마나 슬프고 잔혹한 역사인가. 또한 주변에 야산도 없는 망망초원의 대지에서 강추위에 떨면서 움막을 짓거나 마른 풀잎으로 간이쉼터를 만들 어 자고 풀뿌리를 호구지책으로 삼았을 조상의 비애를 생각하면서 비행기 에서 연신 창밖을 보니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을지 상상조차 되지않는다.
- 시간이 지나 드디어 크즐오르다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날씨가 다소 쌀쌀하 였다. 김에리나 고려문화중심 회장과 계학림 선생(계봉우 독립유공자 막 내아들)등 고려인 관계자들이 마중을 나왔다. 알마티에서와 달리 우리나라 60년대 15인승쯤으로 보이는 낡은 차와 개인 소유 승용차에 분산하여 몸 을 싣고 홍범도 장군이 묻혀있는 기념공원으로 직행하였다. 문화협회 회장 과 담소를 나누고 싶었으나 간단한 용어 정도 밖에 구사하지 못하니 참으 로 안타까웠다. 조금 우리말을 배웠으나 쓸 기회가 없으니 잊어버린다고 한다. 또한 현재 80세인 고려인 노인 한분은 직접 홍범도장군을 보았다 해 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으나 얘기의 신빙성에 의문이 가기도 했다. 그래 도 계봉우선생(민족교육과 항일독립투쟁)의 막내 아들이신 계학림 선생(87 세)이 우리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 마침내 꿈에 그리던 홍범도 장군의 기념공원에 도착하였다. 유사한 기와 지붕으로 만든 통일문을 지나니 울긋불긋 원색으로 단장한 한복차림의 고 려인 여학생들과 아주머니들이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하였다. 언뜻 북한 여학생이나 아주머니들이 연상되었다. 그동안 舊 소련의 공산체제 하에서 살다보니 북한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이종찬 이사장과 계학림 선 생, 김에리나 고려문화중심 회장과 참여자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기념동 상 앞에 모여서 간단한 참배행사를 하기로 하였고 황원섭 이사의 사회로 진행하였다. 이종찬 이사장의 헌화와 참배, 이우재 회장의 종헌 및 참배 등과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연구 결과를 책으로 발간한 김유진선생의 ‘피어 린 장백산’, 김삼웅 전관장의 ‘빨지산 대장 홍범도 평전’, 장세윤 박사의 ‘봉오동 청산리전쟁의 영웅’에 대한 책을 봉정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어서 참여자 모두가 참배를 하였는 바 뜻 깊고 가슴 뭉클한 역사의 현장에 함 께 하고 있다는데 자부심을 가졌으리라 생각이 든다.
- 홍범도 장군이 묻혀있는 기념공원 옆에는 계봉우선생의 동상도 함께 있 다. 계봉우 선생(桂奉瑀·1880. 8. 1. ~ 1959. 7. 5.)은 함남 영흥(永興) 사람 이다. 한국사와 한국어 교과서 편찬을 주도하여 간도 전역에 보급하는 등 북간도 한인사회의 민족교육과 항일독립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던 분이다. 우리 일행은 계봉우선생의 막내아들인 계학림 선생과 함께 동상에 헌화와 참배를 하였다. 그리고 함께 기념 촬영의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계봉우 선생이 살았던 가옥도 시찰하면서 강행군으로 일정을 소화했다.
- 우리 일행은 현지 고려인들과 만찬을 하며 옛 선열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고생한 고려인의 삶에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크즐오르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그 다음날 서둘러 홍범도 거리를 찾아 나섰다. 이곳에 홍법도 거리가 있다는 것 자체도 신기하고 이 나라에서도 홍범도 장군에 게 영웅대접을 하고 있다는 데 고마움과 자긍심을 느낀다. 날씨가 음산하 고 주적주적 비도 내린다. 언제 오려나 싶어 연신 카메라 셔터와 플래시 불빛이 터진다. 선택받은 순간이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강행군을 했지만 정말 가슴 뿌듯함을 느 꼈다. 아울러 홍범도 장군 순국 70주년 행사를 이역만리 카자흐스탄 현지 에서 고려인과 함께 치름으로써 현지 고려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한 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김에리나 고려문화중심 회장과 계학림선생 등 고려인과 크즐오르다에서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움에 공항에서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하며 환대에 감사드렸다. 의사소통은 신통치 않았지만 작별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마음 을 전하는 데 말은 필요 없었다. 기약 없이 크즐오르다를 떠나야 하는 섭 섭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알마티공항으로 향했다.
- 강행군의 연속이었던 여정 속에서도 연로하신 이종찬 이사장과 이우재 회 장, 그리고 연세 많은 참가자들께서 젊은 사람보다 더욱 신바람 나게 활동 하시고 가슴 뿌듯한 마음으로 다니시는 것을 보고 출발 전의 걱정이 기우 였음을 알고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강행군으로 지친 몸을 안고 서울행 비 행기에서 식사를 하였다. 우리 일행의 깊은 잠결 속에 홍범도 장군도 나타 나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듯싶다.
- 10월 28일 오전 9시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간단한 해단식을 하고 각 자 일터와 보금자리를 향해 떠났다.

-이번 우리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의 3박5일간의 현지 추모행사는
첫째, 최초로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직접 방문하여 고려인들과 함께 추 모식 거행, 학술회의 개최, 그리고 40여년만의 연극 홍범도장군을 공연한 것과 홍장군의 유해가 안장된 크즐오르다에서 기념식을 가졌다는 점,
둘째, 학술회의에 국내외의 홍범도 장군 전문연구가들이 참석, 발표한 점과 홍범도 관련 저서를 홍범도장군 기념공원 동상에 직접 봉정함 점,
셋째,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종찬 이사장 등 임원들이 참석하여 현장을 둘러보고 고려인 간부들과 대화를 통해 앞으로 사업방향에 대한 목표와 교류협력 방안을 설정할 수 있었던 점,
넷째, 우당장학회(이사장: 이종찬)를 통해 카자흐스탄 독립유공자 자녀 들에게 장학금 수여길을 열었다는 점 등등 큰 의의가 있었고 보람된 여정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