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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도 장군 서거 70주기 맞아 평전 출간
  김슬지   201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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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서거 70주기 맞아 평전 출간
| 기사입력 2013-10-23 14:06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독립전쟁의 전설' 여천(汝天) 홍범도(洪範圖·1868∼1943) 장군의 서거 70주기(25일)를 맞아 그의 장렬한 삶을 기록한 평전이 나왔다.

애국지사·열사의 평전을 내는데 매진해온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이 평전의 제목은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난 홍범도는 천민계급 출신이었다. 조실부모한 그는 9세부터 15세까지 이웃마을 지주 집에서 꼴머슴살이를 했다. '꼴머슴'이란 소를 먹이거나 사료용으로 꼴을 베 오는 소년 머슴을 말한다.

사회로부터 혜택은커녕 차별과 수탈을 강요당한 신분이었지만 특권을 누려온 이들이 조국을 배신할 때 그는 의병투쟁에 몸을 던졌다.

사격 실력이 발군이었던 홍범도는 간도와 극동 러시아의 춥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대장으로 일본군을 토벌했다. 독립군 부대를 조직해 국치 이래 최초로 국내 진입작전을 펴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일본군에게는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려움의 존재였고, 민중에게는 '축지법을 구사하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전설이 나돌 만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도 그의 주도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3대 대첩' 중 2대 대첩이 홍범도가 아니면 쉽지 않았을 전투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제가 가장 겁냈던 의병대장, 부하들과 주민들이 믿고 아끼고 따르던 대한의용군 사령관, 정통 무관 출신이 아닌 산포수 출신의 의병장이지만 누구보다 우수한 지략과 전술로 일제와 싸웠던 홍범도의 비범한 용기와 지휘력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한세상을 살다 보면 기복과 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한 시대의 지도적 인물들에게 기복과 곡절은 필연적이다.

해방 후 반공을 국시로 한 남쪽에서 홍범도는 레닌으로부터 이름이 새겨진 권총과 돈을 받았고 볼셰비키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배제됐다.

북쪽에서는 김일성과 비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이나 옛 소련에서는 그가 공산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했다는 논리에 밀려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홍범도가 치열한 항일투쟁 경력에도 남한에서 소홀히 취급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우선 독립운동 연구가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고, 남한에 홍범도를 기릴 만한 후손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밀려나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그곳에서 서거했기 때문이다.

항일 무장투쟁에서 첫손에 꼽히는 홍범도 장군이 서거 70주년이 가까워지도록 '유해 귀환' 논의조차 없는 '망각의 독립군'이 돼 버렸다고 저자는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거듭 말하거니와, 해방 70주년을 2년 앞둔 오늘에 이르러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언제까지 천만리 먼 이역에 방치할 터인가, 국민적인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서문' 중에서)

마침 오는 25일 홍범도 장군 서거 70주년을 맞아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에서 '여천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회장 이종찬) 주최로 추도회와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귀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현암사. 312쪽. 1만8천원.

changyong@yna.co.kr